2. 수호천사
“아이, 씨방새! 그래도 분이 안 풀리네, 쌍!”
구름이 들고 있던 대검을 허공으로 뿌리자 먼지처럼 사라졌다.
“한 방에 죽이지 말고 뒤질 때까지 급소만 피해서 찌를 걸 그랬나? 된장!”
터덜터덜 걸음을 내딛던 구름은 나무 뒤 잔디밭 앉아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 하고 있는 한 쌍의 남녀를 발견했다. 주위에 소주와 맥주병들이 굴러다니는 것으로 보아 밤새 그곳에서 밀애를 나누다가 구름과 랩틸리언의 싸움을 목격하게 된 것으로 판단됐다.
“출근 시간이 다 돼 가는데 이러고들 있냐?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이란……. 에잇!”
남녀를 향해 구름이 왼손을 흔들어 보이자 공포에 질려 있던 남녀의 눈꺼풀이 스르르 감겨졌다. 저만큼 걸어가던 구름이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‘딱’하는 소리를 내자 그 소리에 놀란 남녀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치켜떴다.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두 사람은 서로를 발견하고는 겸연쩍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.
“깜빡 잠들었나보네?”
“그렇게 말이야.”
“하루 밤에 소주 한 짝을 해치우는 내가? 그게 말이 돼?”
“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지, 뭐……. 그만 집에 가자, 오빠?”
남자가 여자의 손을 꼭 움켜쥐며 속삭였다.
“우리 이제 밤을 함께 보낸 사이, 된 거다?”
여자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.
“응. 자기…….”
사내가 입을 가져가자 여인이 살며시 포옹했다. 그 광경을 지켜보던 구름이 콧방귀를 끼며 중얼거렸다.
“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쪽쪽거린다니까! 에휴, 늙으면 죽어야지. 저 꼴 안 보려면!”
혼의 집으로 향하던 구름은 한 골목 입구에서 만취객과 마주쳤다. 30대의 취객은 전봇대에 소변을 보다가 구름을 발견하고는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두 눈을 반짝거렸다.
“이봐 아가씨! American? Russian?”
사내는 바지를 추켜올리는 것도 잊은 채 허겁지겁 구름을 향해 ‘갈지(之)’자로 다가왔다.
“Hey sweety? How much? Hey?”
사내가 손을 내뻗음과 동시에 구름이 두 발을 굴렀다. 허공으로 솟구친 그녀가 옆 건물 옥상에 착지해 내렸다. 순식간에 여인이 자취를 감추자 사내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.
“Hey, Sweety? 지금 나랑 나 잡아 봐라 놀이 하자는 거지? 좋아, 좋아! 그 대신 잡히면 놀이 종목을 바꾸는 거다? 구멍치기 놀이로?”
옥상을 가로질러 혼이 사는 집 옥상에 도달한 구름이 몸을 날려 창가로 뛰어내렸다. 하지만 당연히 침대 위에 곯아 떨어져 있어야 할 혼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. 벽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선 구름은 화장실로 향했다. 하지만 그곳에서도 혼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.
“단비! 지금 어디야?”
“걱정 안 해도 돼. 내가 보호하고 있으니까!”
단비는 석촌 호수 서호 공연장 앞 난간에 걸터앉아 있는 혼을 산책로 너머 숲 속에서 주시하고 있었다. 그녀의 눈을 통해 상황을 파악한 구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.
“이 시간에 거긴 왜?”
“몰라. 몽유병 환자처럼 갑자기 벌떡 일어나 이리 왔어. 아마 물속으로 뛰어들 것 같은데?”
“자살을? 왜?”
“지금부터 알아봐야지. 걱정하지 말고 나한테 맡겨 둬!”
“하여간 꼴통이라니까!”
구름은 어느새 단비 옆으로 공간이동 해왔다.
“가 봐. 왜 또 지랄인지…….”
“오케이!”
인기척을 느낀 혼이 고개를 돌렸다. 180cm는 될 법한 큰 키의 여인이 해 맑은 미소로 바라보고 있었다.
“이 시간에는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…… 부지런하시네요?”
“그 쪽도요…….”
“제 이름은 단비예요. 그 쪽은요?”
“유 혼…….”
단비가 다가와 난간 위에 걸터앉으려 하자 혼이 만류했다.
“그렇지 않는 게 좋아요. 여긴……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어요. 늪처럼…….”
“근데 오빠는 왜 그렇고 있어요?”
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비는 그의 옆에 나란히 걸터앉았다.
“나는 빠져도 상관없으니까…….”
“빠지면 못 나온다면서요? 빠지면 죽는 건데 그래도 상관없어요?”
“네……. 난 이번 생의 미션을 완수했거든요.”
“이번 생의 미션이요? 그게 뭔데요?”
“무지몽매한 대중을 각성시키는 거요.”
“그게 이번 생에서의 오빠의 미션인데 완수했다고요? 와우~ 그럼 되게 유명하신 분이시겠다?”
“인터넷에서는 그렇죠.”
“인터넷 어디에서요?”
단비가 담배 2개비를 물고 불을 붙인 후 하나를 혼에게 건넸다. 필터에 빨간 루즈가 잔뜩 묻은 담배를 건네받은 혼이 말했다.
“여기 금연인데…….”
“이 시간에 뭐 어때요? 우리밖에 없는데…….”
“하긴……. 비흡연자를 보호하기 위해 금연지정을 한 건데 지금 여기엔 흡연자만 둘 있으니까 펴도 상관없겠네요.”
단비가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말했다.